금전적으로 '빚'을 한 번도 안 져본 이는 있겠지만, 한 번만 져 본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빚'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좀 먹는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는 '오랫동안 심연을 바라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바라본다'란 명구를 남긴 바 있는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 만화를 보면서 느꼈다. 이 만화를 계속해서 내가 들여다본다면 내 안의 심연이 나를 들여다볼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든 것이다. 이 만화에 대한 한줄평을 남겨보자면, '내가 아는 그 모든 문학 중 최악이다'란 코멘트를 달고 싶다.
그 녀석은 나에게 지금이 최악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사채꾼 우시지마>를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 만화를 말했다. 나는 최악은 아니었고, 좀 우울함이 밀려올 때쯤 이 만화를 접했다. 그리고, 기분이 아주 몹시도 더러워졌다. 설마 저렇게까지 현실이 시궁창이겠냐고 만화를 보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이상, 이 만화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채꾼 우시지마>는 말 그대로 '우시지마'라는 사채꾼에 관한 내용이다. 한때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인 <쩐의 전쟁>의 원작 만화와 비슷한 선상에 위치한 만화다. 그러다 박인권의 <쩐의 전쟁>의 주인공이 일말의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사채꾼이라면, 우시지마는 그야말로 돈밖에 알지 못하는 '수전노'이다. 그는 진정으로 냉혹한 자본주의의 신봉자이다. 따라서 그에게 인간이란 '빚진 놈'과 '빚질 놈' 딱 두 부류로 나뉜다.
한편, 이 만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자체가 '우시지마'지만 우시지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빚진 사람과 그 주변부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빚'이라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대놓고 보여준다. 일본 만화 특유의 유머나 휴머니즘적인 요소는 전혀 없고 리얼리즘만 적확히 강조되어 있는 이 만화는 어떤 면모로 보나 '최악'이란 말이 연신 나올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특히, 만화를 보는 내내 우시지마에게 어떤 숨겨진 비밀이라든가, 일말의 선함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나의 멍청함은 끝끝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우시지마는 기존의 영화나 만화, 소설 주인공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이질감이 있다. 그것은 그가 가장 문제가 없는 문제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자 '돈'으로서 자신의 노예를 만든다. 그것이 잘못인가라는 질문을 우시지마에게 던지고 싶었으나, 우시지마는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다. '돈'을 왜 모으는지 혹은 대체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 어떤 철학도 없다.
그저 '빚'지면 그야말로 '좆'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그거 하나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훈이다.
'빚을 지지 마라'라는 교훈. 빚을 질 때는 할부지만, 갚을 때는 일시불이다. 마치 행복은 할부로 쪼개서 우리에게 오지만, 불행이 일시불로 오는 것과 이치가 같은 것이다.
어찌어찌 꿋꿋하게 참고 참으며 20권 가까이 이 만화책을 봤지만, 그다음부터는 도저히 계속해서 볼 용기가 없어서 찾아 보지 않았다. <사채꾼 우시지마>에 짙게 깔린 어둠이 정말 솔직하게 두렵기까지 했다. 만약, 내가 <사채꾼 우시지마>의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다면, 나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란 두려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