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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 폭력이 모든 것을 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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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l 2020. 3. 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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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문제는 길고도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학교는 작은 사회고 그 속에서 폭력은 언제나 존재했다. 폭력이 없는 학교란 범죄가 없는 사회만큼 상상하기 어렵다. 철저한 계급 사회와 약육강식을 묵인하는 '학교'란 공간은 애초에 그 태생 자체가 폭력적이었을지 모른다.

사회에 적합한 인재와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하는 '학교'란 공간이 추구하는 목적성은 궁극적으로 '사회화'다 경쟁을 통해 폭력적인 사회에 순응하고 도태되지 말라고 말하는 '학교'는 결국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인정하고,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라고 종용한다. 경쟁을 목적 아래 학교 안에서의 '폭력'은 구성원 모두를 잠식시킨다. 의식했건 의식하지 못했건 간에 우리 모두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일정 부분은 폭력에 노출돼 있었고, 그것에 대해 묵인하는 법을 배웠다. 

학교 폭력의 원초성을 보여주는 만화는 이은재의 <TEN>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영만의 그림체를 닮은 이은재 작가는 <1호선>이라는 웹툰으로 마니아들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다. 

이은재의 웹툰 <TEN>은 학교의 폭력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기존의 학원 폭력 만화의 문법은 진부하리만치 우리에게 익숙하다. 1990년 대 후반 임재원의 '짱'을 필두로, 후지사와 토오루의 '상남2인조', '반항하지마' 등의 학원 폭력 만화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 작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학원폭력물은 당시 학창시절을 보내던 이들의 문화 아이콘이자 궁극적 지향점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보다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결코 나아지지는 않은 듯 보인다. 여전히 학원폭력에 대한 동경으로 박태준의 '외모지상주의' 나 '일진의 크기' ,'통' 등의 웹툰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연일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보도하는 기사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태가 심각함에도 학교 당국이나 정부 나아가 어른들은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원폭력물이 시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순정 만화와는 적확하게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순정만화가 사랑을 소재로 감수성을 예민하게 터치한다면, 학원폭력물은 힘과 권력에 대한 갈망을 거칠게 그러낸다. 이 힘이라는 원초적인 동경이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극대화된다. 학교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군대에서 구타와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획일성을 추구하는 공간에서 힘과 권력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유일한 해방구이자, 권위와 개성을 여과 없이 보여줄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리고 나는 남과 다르다고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 된다. 

<TEN>은 이 학교 폭력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존의 학원폭력의 주인공이 대부분 정의감을 앞세워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반면 <TEN>의 주인공 김현은 생존을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김현은 철저하게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피해자인 김현은 밟힌 지렁이와 같이 한번 꿈틀 됐던 것이 화근이 되어 한순간에 가해자로 둔갑해 버렸다. 오히려 가해자였던 현유학은 자신의 배경을 사용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다니던 학교에서 전학을 권유했고, 김현은 무명 고등학교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학교로 향하게 된다.

무명 고등학교, 학교 폭력의 가해자만을 모아, '폭력이 모든 것을 정화시킨다'라는 것을 슬로건으로 폭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학교다. 무명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방식 또한 폭력적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1학년으로 시작하며,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려면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시험을 거쳐 10명 안에 든다면 2학년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은 2학년과 3학년 때도 고스란히 통용된다.

숫자, 10을 의미하는 TEN. 한 공간 안에서 무차별적인 폭력을 통해 10명이 서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투쟁하고 생존해야 하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싸움, 김현 또한 이 생존 게임 속에서 졸업을 위해, 그리고 복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바로 이 살아있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TEN은 폭력적인 학교와 사회에 하나의 돌을 던진다. 폭력에 둔감한 사회, 아니 폭력을 방조하는 사회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력이 모든 것을 정화시킨다. 그럼으로 너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무명 고등학교의 교칙에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며, 어떤 것을 단죄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사회가 이렇게 쓰레기 같은 곳이라니'라고 말하는 김현의 절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있는 내게 너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 이은재 작가는 <TEN> 이후 <ONE>이라는 웹툰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온다. <ONE>은 <TEN>이 학교 폭력의 현재를 말하는 것과 달리 학교폭력의 시작 혹은 원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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