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드라마로까지 제작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윤태호의 <미생> 열풍이 <미생> 시즌2에 들어서는 조금 잠잠해진 듯하다. 그 이유를 좀 살펴보자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내용이 바뀌었다는 점과 더불어 시즌1에 비해 알고 있고, 겪고 있는 리얼리즘이 한층 더 강화됐다는 것에서 찾고 싶다.
현재 대한민국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는 90%에 달한다. 단 10%만이 대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의 현실은 <송곳>보다, <미생>보다 참담하다.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에 종사하는 임금 노동자의 60%에 불과하다. 임금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그에 따른 현실적 괴리감 또한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만화에서조차 밀접한 현실을 접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미생> 시즌2는 <송곳>이 그랬듯 <미생>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기 어렵다.
사실 돌이켜 보자면 <미생>은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판타지'였다. 어렴풋하게 접하는 대기업의 현실 속에서 미생의 장그래는 한때 폼 나는 사원증과 마천루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것을 꿈꿨던 '우리'였다. '장그래'의 고민은 한때 나의 고뇌였고, 내가 꿈꾸던 고민이었기에 우리는 장그래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 2의 장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장그래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데, 점점 보잘 것 없는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을 전락한 장그래를 통해 현실을 마주하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웹툰 안에서만이라도 조용하고 묵묵하게 우리는 장그래와 온길 인터내셔널이 이 뭣같은 기업 현실에 크게 사이다를 퍼부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태호는 크게 사이다의 통쾌함보다 계속해서 얻어맞고 깨지고, 부서지면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통렬함을 독자들이 느껴주길 바라는 듯 하다. <미생> 시즌 2는 그래서 윤태호답지 않게 사족이 많고 인물 간의 대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시즌 1 때보다 윤태호가 상황과 현실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아졌다는 뜻일 것이다. 예기치 않은 직업병으로 인해 오랜 휴재에 들어간 <미생> 시즌 2의 진행은 여전히 매우 더디다. 나는 여전히 장그래를 응원하고 공감하며 <미생> 시즌 2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구르고 깨지는 현실 속에서 장그래가 어떻게 자신만의 '꿈'을 찾아나가지는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간에 <미생> 시즌 2는 장그래의 개인적 사유와 상황에 머물렀던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이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확장성으로 넘어간다. 대기업 인턴 때조차 경제적 상황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장그래가 '돈'이라는 원론적 현실에 대해 고민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부련 사장이나 오상식 부장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시스템을 가진 원인터내셔널에서 벗어난 이들은 이제 울타리가 없는 상황에서 현실에 직면한다. 유에서, 무로, 갑에서 을로 돌아간 이들은 현실 속에서 저마다의 사정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든 타계하려는 모습이 미생 시즌 2의 주요 골자를 이룬다. 그래서 <미생> 시즌 2의 미생은 이제 장그래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로 치환된다.
<미생> 시즌 2의 결말을 나름 예상해 보자면, 미생 시즌 2 또한 시즌 1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속의 현실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윤태호가 결국 미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현실도 진짜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윤태호의 필력이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얕고 단순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란 것이 지나치게 깊고, 복잡하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간극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미생>의 장그래는 지나치게 행복해서도 안 되며, 지나치게 불행해서도 안 된다. 바둑을 통해 삶의 사유와 통찰을 습득한 장그래지만, 일어나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야 하며 적절히 융통성을 갖춰야 한다. 너무 가난에 찌들어서도 안 되고, 너무 부유해서도 안 된다. 너무 뛰어나서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한 인간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미생>의 장그래가 가질 수밖에 없는 모순이자, 우리가 바라는 장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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