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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이야기꾼, 아사다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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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l 2020. 3. 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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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사다 지로는 집안의 몰락과 함께 불량소년이 된다. 20대에 일본의 육상자위대에 복무한 경험이 있던 아사다 지로는 군 전역 후 소위 네트워트 마케팅으로 인해 꽤나 큰 금전적 성공을 거둔다. 이런 독특한 연유로 한국에서는 자극적인 마케팅을 위해 아사다 지로를 한때 '야쿠자'였다고 필모그래피에 적어놨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저 주변 친구들 중 '야쿠자'가 몇몇 있었고,

소설가가 되기 전 이력의 특성상 뒷골목과 조금 더 친숙했을 뿐, 그 자신이 '야쿠자'는 아니었다.

조금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아사다 지로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 것은 하나의 문구에 기인한다.

'몰락한 가문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했던 말이다)'

이 말에 소설을 쓸 원동력을 얻었던 아사다 지로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30대 중반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쏘냐>라는 제목의 소설을 집필한다. 이후 왕성한 활동을 펼친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크게 세 가지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쏘냐>, <번쩍번쩍 의리통신>, <프리즌 호텔> 등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소설들이다.  이 소설들은 아사다 지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실감 나는 묘사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역사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아사다 지로가 쓴 역사 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창궁의 묘성>이나 <칼에 지다>, <중원의 무지개> 등이 있으며, 특정 시대에 인물에 대한 아사다 지로 특유의 따뜻한 감성과 더불어 있는 역사 자체를 굉장히 삐딱하게 다룬다. 특히 <창궁의 묘성>이 다른 역사 소설과 달리 가장 독특했던 부분 중 하나는 대개의 역사서에서'욕망'에 사로잡혀 그리 호평을 받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그 나름의 개연성과 붙여 그들이 대의를 위한 '위악'을 행한 것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청나라 말기의 '서태후'에 관한 아사다 지로의 심리 묘사는 그 역사적 상황과 궤를 함께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수긍이 가기도 한다. 물론 <창궁의 묘성>을 읽다 보면 종종 아사다 지로가 특유의 휴머니즘에 집착한 나머지 심한 역사 왜곡과 오류 등을 범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뭐 어쨌든 역사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역사'보다는 '소설'에 방점이 찍히고 있는 것이니, '소설적 허용'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러려니 했다.

<창궁의 묘성>이 청나라 말기를 일본인의 시각으로, 아사다 지로의 삐딱하게 재해석한 소설이라면 <칼에 지다>는 아사다 지로 특유의 감성이 철철 묻어 나오는 역사 소설이다. 때는 에도 막부 미부의 늑대라 불리는 신선조(신센구미)는 혼란했던 에도 막부 시기의 개항에 반대해 독자적 발전과 외세를 배척을 외쳤던 무사 집단이다. 우연히 신선조에 들어간 요시무라 칸이치로는 뛰어난 무예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가 칼을 휘두르는 것은 에도 막부 시기의 다른 무사와 전혀 다르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돈을 위해 칼을 쓴다. 고향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 '소시민' 무사를 통해 신선조와 에도 막부의 상황, 그리고 역사 속의 개인에 대한 상황 설정 및 묘사가 탁월하다. 자칫 신파나 진부해질 수 있는 대사와 내용도 아사다 지로 특유의 문체와 필력으로 억지 감동이나 눈물이 아닌 애잔한 슬픔과 구슬픈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칼에 지다>는 추후 <바람의 검, 신선조>라는 영화로도 각색되어 만들어졌을 만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영화 자체도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고증을 잘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아사다 지로가 쓰는 장르는 감동 소설(?)이다. 잔잔하고 어디에나 있음직법한 이야기를 특유의 해학을 잊지 않으며 조용하고 잔잔하게, 그리고 쓸쓸하게 이어 나가는 소설들은 아사다 지로의 대표작은 아니일지언정 가장 널리 읽히고 많이 알려진 소설들이다. <철도원(러브레터)>이나, <천국까지 100마일>, <츠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SBS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슈산보이> 등은 눈물 없이는 결코 읽을 수 없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마음 한 구석을 아련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런 아름다운 문체와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비결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에 관한 특유의 신념에 기반을 둔다. 아사다 지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곧 소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하나의 이야기를 집필할 때 그 스스로 숙지하고 있는 원칙은 세 가지다. 

아름답게 쓸 것, 알기 쉽게 쓸 것, 재미있게 쓸 것

그것이 단편이든, 장편이든, 현대물이든, 역사물이든 상관없이 아사다 지로는 이 세 가지 원칙에 충실한 글쓰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하루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 등 내로라하는 일본의 소설가 중 나는 이야기꾼으로 가장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는 단연 아사다 지로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어떤 기교나 MSG를  첨가하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눈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가슴 한구석이 성글한 매력이 그의 '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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